교학과 공지사항
교수공지사항
학생게시판
교역자 청빙
원우회 공지사항

학생 게시판

홈 : 공지사항 : 학생 게시판

글제목 : 이상준 전도사, "찬양의 자리" (사도행전 16장 16-25절)
글쓴이 : 고정훈 : 등록일 : 2019-09-25 오전 7:15:26 : 조회수 : 32
190925수 침신대 생활관 새벽예배 "찬양의 자리" (사도행전 16장 16-25절) 신대원 3년 이상준 전도사 - 본문말씀 (행 16: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 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행 16:17)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 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행 16: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행 16:19)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행 16: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 여 (행 16: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행 16: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행 16: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행 16: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행 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질문 하나로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찬양하면서 은혜 받았다, 이 은혜를 누리십니까? 이 새벽 이 자 리, 저 언덕길을 내려오면서 여러분들의 마음을 어떠셨습니까? 예배의 자리를 얼마만큼 기대하며 오셨나요? 지금보다 시험기간이 되면, 저는 개인적으로 시험기간 이후에 새벽예배를 시작할 때, 그 때 오히려 시험이 더 많고, 과제가 많은 기간입니다. 새벽3-4시까지 과제를 하고, 아침에 그 때 찬 양의 소리를 들으며 일어날 때, 이미 마음이 닫혀 있습니다. 눈에 잠이 가득한 상태잖아요. 저는 종종 눈을 최소한으로 뜹니다. 시야를 확보하려고, 물론 지금도 눈을 크게 뜨지는 않았지만, 후드 집업을 뒤집어쓰고, 내려갑니다. 가끔 보면 수도사들 같아요. 다 그렇게 후드 집업을 뒤집어쓰고 가는 모양이 … 어쨌든 언덕을 내려오고, 강당 이 자리에 와 앉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잠을 깨려는 노력을 하고 싶 지가 않아요. 그런데 여기서 잠이 깨면 올라갔을 때 다시 자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잠을 보전하 기 위해, 그래서 눈을 희미하게 뜬 상태로 찬양팀을 바라보면, 어느 새 스르륵 잠이 들고, 설교자 가 기도할 때 눈이 떠집니다. 그리고 말씀이 끝나자마자 나가는 행렬을 쫓아 다시 기숙사에 갑니 다. 이게 우리가 같이 누리는 생활의 모습인 것 같아요. 이 은혜의 자리가 벌점 받고 싶지 않아서, 그런 몸부림 외에는 예배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거 같습 니다. 여기에 많은 분들은 예배의 홍수에서 살고 계시잖아요? 일반적인 분들보다는 많이 예배를 드 리고, 채플도 참여하게 되고 … 그러다보니 내가 찬양해야 할 자리와, 그냥 앉아서 쉼을 누려야 할 자리를 구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떤 예배에 갔는데 찬양인도자가 맘에 안 들고, 찬양 선곡이 맘 에 안 들면, '오늘은 날이 아닌가보다' 그렇게 내려놓고, 친구와 갈등이 있으면 또 내려놓고 … 너 무 많이 하다 보니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모든 예배의 자리에 참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사역을 하시잖아 요? 다들 사역하는 자리에서는 열심을 내는데, 그런 자리가 아니면 그냥 앉아있다가 나오는 일이 많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요. 우리는 예배하는 자리에 대해 많은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피곤하면 안 되고, 피곤하면 예 배는 잠자는 자리, 쉼을 쫓는 자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바울과 실라는 이런 것에서 자유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을 그 있는 자리가 찬 양의 자리였습니다. 삶의 모든 순간이 찬양할 수 있는 자리였고, 예배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예 배드리기 좋은 조건이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과 실라는 찬양할 만한 상황이 전혀 아닙니다. 오늘 본문 이후에, 지진이 나서 간 수가 회심하는 귀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25절의 상황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랐습 니다. 그럼에도 찬양하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이들의 상황은 하나님을 따라가는 상황에서 일어난 것이죠. 빌립보 지역에 사역을 하러 갔지요. 귀 신을 쫓아내고, 감옥에 갇히고, 발에 족쇄가 채이고 …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때, 그 결과 가 평탄치 않다는 겁니다. 아예 시작하지 않았다면, 있지 않을 상황이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받고 있다는 겁니다. 그럼 우리가 이럴 때 어떤 마음이 들겠어요?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보다, 왜 주님이 나에게 이런 상황을 허락하시는지 따지고, 묻게 되고, 이 상황을 탈피하는 기도를 더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 앞 에 기도하고 찬양했다는 겁니다. 바울을 로마시민권자였잖아요? 로마 시민권자는 법적으로 때리는 것이 아주 큰 죄였습니다. 현실적 으로 '내가 왜 지금 이런 꼴을 당하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고,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할지 고민 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이후에 바로 옥이 흔들리고,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 라는 이 문제가 얼마나 갈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냥 여기서 죽게 될 수도 있고, 오래 갇혀있 을 수도 있습니다. 군인에게 전역일이 없어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끔찍하겠어요?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이들이 찬양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던 이유가 무엇일 까요? 바로 하나님을 향해 시선을 두었다는 것입니다. 날 위해 죽으셨고, 다시 사셨고, 날 구원하 신 그 분을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더니 그 자리가 찬양의 자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찬양이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볼 때만 가능합니다. 찬양이 조건이 충족되고, 세션이 있고 좋은 곡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볼 때, 그 때 우리가 찬양할 수 있다는 것입니 다. 악한 삶의 풍조를 따르는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 분의 신실하심,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찬양할 만한 자리와, 예배할 조건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아냐, 일 단 내 상황, 문제, 감정부터 해결해야겠어!'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으시나요? 처음 찬양인도를 할 때 어려웠습니다. 준비를 할 것이 많더라고요. 콘티를, 멘트를, 구성을, 세션 을 … 반복할 때 그 멘트 타이밍 … 처음 시작할 때는 굉장히 부담되고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잘 하고 싶었던 저는 꼼꼼히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찬양인도를 시작했는데, 많이 준비할 만큼 사소하 게 삐걱거리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어떤 싱어 친구가 피치가 너무 떨어져서, 불협화음이 날 정도가 되었습니다. 피아노 반주를 권사님이 해주셨는데, 눈이 안 좋아서 돋보기를 하고 쳐 주셨어요. 또 복음성가에 익숙하지 않으시 니, 박자가 어긋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찬양인도를 하면 참 시험에 듭니다. '아, 오늘 찬 양 망했다 … 하고 싶지 않아, 도망가고 싶어'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느 날, 음이 떨어지는 친구의 표정을 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친구의 얼굴의 눈물이 보이기 시작하고, 권사님의 열심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악보에 빨려들어가 다시피 하시면서, 익숙하지 않은 찬양을 치시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저도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로 모르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바라보고, 눈물이 흐르게 되 는, 마음이 평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으로 인해 내가 찬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여전히 찬양의 자리를 찾으시겠습니까? 고려하고 찾으시겠습니까? 그럼 그 조건이 충족 되면 찬양이 잘 되시던가요? 세션도 좋고, 찬양도 나쁘지 않은데, 그냥 조용히 따라만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찬양이 찬양 되지 않는 그런 상황이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가장 본질적인 것,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자리가운데, 이 상황 가운데 나에게 죽으셨고, 다시 사신 그 분을 바라볼 때, 내 입술이 찬양하게 됩니다. 마음이 기뻐하게 됩니다. 이 자리에 올 때 마음을 닫고, '나는 오늘 절대 잠이 깨지 않으리라!' 이것은 내가 피곤한, 여러 상황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리가 찬양의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자리든지 찬양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이전글 : 고정훈 전도사, "회개한다고 다 복음인 것은 아니다!" (마가복음 1장 14-15절)
다음글 : 최선범 생활관장, "나는 누구인가" (마태복음 16장 13-1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