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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 : 고정훈 전도사, "회개한다고 다 복음인 것은 아니다!" (마가복음 1장 14-15절)
글쓴이 : 고정훈 : 등록일 : 2019-10-07 오후 8:43:39 : 조회수 : 33
191001화 침신대 생활관 새벽예배 “회개한다고 다 복음인 것은 아니다!” (마가복음 1장 14-15절) 신대원 3년 고정훈 전도사 - 본문말씀 (막 1: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막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 더라 여러분은 언제 가장 기쁘신가요? 언제 가장 행복하신가요? 언제 평안함을 느끼시나요? ( … ) 용돈을 받거나 월급을 받았을 때인가요? 아니면 치킨을 앞에 두고, "오, 주님! 매일 먹는 치 킨이지만, 오늘도 일용할 치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인가요? 우리는 상황이 좋아지면 기뻐합니다. 어려움이 해결 되도 기뻐합니다. 가지고 싶은 것을 가져 도 기뻐하고, 어떤 목표를 달성해도 기뻐할 수 있지요.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가장 기쁠 때는, 믿음의 사람에게 가장 기쁠 때는, 내 마음에 주님 계심이 확인될 때입니다. 이것이 참 기쁨이고, 이 기쁨은 다른 기쁨으로는 바꿀 수 없습니다. 이때는 좋은 상황일 때도 물론이지만, 오히려 배고플 때일 수 있고, 용돈 다 떨어졌을 때일 수도 있고, 죽을 것 같은 고통과 어려움이 나에게 왔을 때일 수도 있습니다. 그 때에도 믿음 의 사람은 주님이 계시면 기뻐하고, 주님이 확인되면 평안합니다. 이 믿음의 실재가, 오늘 여 러분 가운데 명확해지시기를, 사랑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닫고 따라가기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목적은 (1) 복음이 무엇인가? 이것이 명확해지는 것에 있고, (2) 복음으로 연결되는 회개란 무엇인가? 이것이 우리에게 명확해져서, (3) 삶에서 복음에 이르는 회개가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마가복음 1장을 전체적으로 살펴볼 건데요. 예수님과, 여러 등장인물들의 반응, 태도, 행동을 통해, 가짜 회개와 진짜 회개가 있다는 것을 볼 것입니다. 당연히 복음으로 연결되는 회개가 진짜 회개입니다. 지난 학기에도 제가 같은 본문으로 이 자리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때 설교 제목이, “회 개 없는 복음은 없다!”였습니다. 기억 나시나요? 그 때 죄의 개념, [하마르티아]에 대해 나 누었습니다. 죄는, [하마르티아]는 과녁이 빗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과녁은 오직 주 님입니다.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떠나 세상으로 달려가는 것은 죄지요. 그러나 예수님을 따 른다고 하면서, 예수님 외에 다른 것에 마음을 두는 것도 분명한 죄입니다. 예수님을 조준하 고 달려가는 것 같지만, 교묘하게 다른 것에 걸쳐져 있는 시선이 있습니다. 이것이 죄라는 것, 내 삶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오늘 말씀을 통해 살펴볼 것입니다. 지난 학기 말씀에도 여러 가지 예시를 들었는데, 그 중 하나가 등록금이었습니다. 제가 등록 금을 못 냈다고 합시다. 심지어 당장 낼 돈이 없어요. 등록금 늦게 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 만, 학기 시작했는데 등록금 안내면 학교에서 빨리 돈 내라고 문자가 옵니다. 그럼 이제 조금 씩 긴장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런 어려움을 주변에 이야기하면, 주변 사람들이 충고해주 지요. “정훈아, 너 뭐해, 빨리 가서 기도해야지. 지금 이럴 시간이 어디 있어. 하나님께 구 하면, 그 분이 주실 거야!” 이게 맞는 말 같지만, 그 본심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고 했었지 요. 그런데 제가 여러 사람들의 충고를 듣고 이렇게 기도했다고 해 봅시다. “어휴 주님! 하나님이 이 학교 보내셨잖아요. 그런데 등록금 없으면 어떡해요! 저 학교 짤려 요ㅠㅠ 살려주세요 엉엉 …” 제가 이렇게 기도한다면, 제 마음에 지금 주님이 계신 걸까요, 아니면 등록금 문제가 있는 걸까요? ( … ) 이런 기도를 했던 저는, 이 등록금 문제가 해결되 면 기뻐할 것입니다.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쁨과 찬양이, 그다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이제 문제가 해결되었으니까, 급한 일이 없으니까, 주님 없이도 큰 문제없거든요 … ( … ) 내 마음에 주님보다, 이 문제의 해결됨이 더 큰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 … ) 여러분은 문제를 위해 기도하다가,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주님과 더 가까워지시나요, 멀어지 시나요? ( … ) 이런 자신을 살펴보는 것은 큰 지혜입니다. 마음에 주님으로 인한 기쁨이 확인 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죄고, 다른 곳을 조준하는 [하마르티아]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곳에 마음 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 다니고 세 상을 향해 달려가서 사는 것도 죄지만, 그것만이 죄는 아닙니다. 결국 죄는 마음의 문제입니 다. 내 마음이 지금 어디에 가 있는지, 무엇으로 기뻐하는지, 그것을 살펴보아야, 내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이 비로소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십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선포하십니다. 그러면서 바로 이어서, 마가복음 1장 16절부터를 보면, 제자들 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복음을 선포하시며, 제일 먼저 하신 것이 제자를 부르신 일이 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다른 각도에서 말하면, “나를 따라오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길이라 표현하십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 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서만 우리가 죄에서 자유할 수 있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길입니다. 길은 우리가 따라가야만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목회자만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 지요.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오늘 주님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라!” ( … ) 오직 주님을 끝까지 따라가는 우리 모두 되기를, 사랑하는 예수님 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이 땅에서 공생애를 사시며, 우 리에게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보여주신 길을 따라갑니다. 그 주님을 따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엄청난 인기가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능력도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한 자리 차지하지 않으셨지요. 오직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셨습 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셨습니다. ( … ) 그리고 제자들은, 그것마저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침례를 받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확인하면, 침례를 받습니다. 내가 물에 잠길 때,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은 것입니다. 내가 다시 일어날 때, 나는 죽고, 내 자아는 죽고, 내 죄성은 죽고, 이 제 주님으로 산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고 사신 예수님을, 우리가 신앙으로 따릅니다. 그럼 이제 끝인가요? 아닙니다. 주님은 부활하시고 하늘로 가셨습니다. 마가복음의 시작엔 “하나 님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예수님의 승천 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막 16: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하나님 우편에 예수님이 앉으셨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어떻게요? 내 마음이 가는 것입니다. 내 소원이, 내 시선이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의 것에 흔들 리지 않습니다. 땅의 문제에 의연할 수 있습니다. 땅에서 욕심 부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 늘에 내 시선이 있으니, 내 마음이 있으니까! 내가 하늘 소망으로, 천국 소망으로 살 수 있습 니다. 예수님이면 정말 충분한 인생, 예수님이 인생의 목적인 인생! 바로 우리가 되어야 합니 다. 이 신앙을 확인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사랑하는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같이 마가복음 1장의 여러 사건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1장 21절부터, 예수님은 가버나움에 있는 회당에서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마침 귀신 들린 사 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소리를 지릅니다. (막 1: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귀신이 예수님을 알아봤어요, 예수님을 안다고 말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합니다. 그런 데 주님은 25절에 이어서, 그 귀신 들린 자에게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말씀하 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이 귀신을 쫓는 것이야 뭐 당연한 일이고, 별난 일이 아니지 요. 그런데 주님은 왜 귀신에게 ‘잠잠하라’고도 하셨을까요? 여기서 의구심이 생깁니다. 귀신이 인정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예수님의 이름이 더 전달되 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귀신까지 인정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예수님의 사역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 … ) 34절에 보면 더 대놓고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막 1:34)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 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주님은 귀신들이 자신의 정체를 말하는 것을 막으셨을까요? ( … ) 이 이유가 명확해져야, 오늘 말씀이 명확해집니다. 예수님이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내쫓으시는 내용, 바로 뒤에 35절을 보면, 예수님은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러 가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그런 주님을 찾아와서는 말합니다. 35-37절에, (막 1: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 더니 (막 1: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막 1:37)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예수님의 이름이 많이 드러났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습니다. 유명해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대답은 제자들의 기대와 다릅니다. 이어서 38절에, (막 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 여 왔노라 하시고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로 가자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지금 찾는 자들이 많 은데, 그들에게 가는 게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거기 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또 의구심이 생깁니다. 아니 예수님은, 전도하러 오셨는데, 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안 가시고, 다른 곳으로 가시나요? 예수님을 찾는 자들을 만나주시는 것이 당연한 거 아녜요? ( … )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40절 이하에도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나병환자를 치료하십니다. (막 1:40)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막 1:41)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 함을 받으라 하시니 (막 1:42)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그런데 예수님이 알쏭달쏭한 말씀을 하십니다. (막 1:43) 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사 (막 1:44)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 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예수님은 나병이 나은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참 이상한 노릇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엔,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예수님이 더 유명해질 수 있는 기회 일 것 같은데요? 그렇게 되면 전도하기가 더 수월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예수님의 말을 제대로 안 듣습니다. 45절에 이어서, (막 1:45a)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말을 안 듣지요. 그래서 45 절 하반절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막 1:45b) …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 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 … ) 나병환자가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한 것과, 예수님이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신 것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왜 굳이 부정적인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셨다’는 말이 기록 되 어 있을까요? 이제 보았던 여러 조각들을 하나로 모아봅시다. 마가복음 1장 14-15절에,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십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 라!” 그리고 바로 이어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며,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38절에서는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 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전도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 복음이 무엇인가요? 바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귀신들이 말하는 것을 금하셨고, 나병 환자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나 병 환자는 그 말을 듣지 않았고, 그래서 예수님이 동네로 들어가지 못하셨습니다. 다시 말하 면 나병환자의 소문이, 예수님의 전도 사역에 방해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문이 퍼져갑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쫓아옵니다. 그런데 오히려 주님은 그들을 피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잖아요?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다면, 그것이 제자 아닌가요? 그것이 길 되신 예수님 따라가는 제자들인 것 아닌가요? ( … ) 안타깝게도, 그들은 제자가 아닙니다. 이들은 그저 예수님을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는 사람들입니다. ( … ) 그래서 예수님은 귀신들의 입을 막으셨습니다. 나병 환자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셨 습니다. 그들의 말은 들은 사람은, 주님을 따르는 제자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을, 주 님의 무언가를 따르는 사람들이 됩니다. 자신의 무언가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될 뿐입니다. 회개는 원어로 [메타노이아]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변하고, 죄로부터 돌이킨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이 삶에서 죄를 돌이키고,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오병이 어 사건을 경험한 많은 이들이 심지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왕은 자신들의 최고 라는 의미입니다. 자신들의 주인으로 고백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서 급 히 떠나십니다. 제자들 또한 급히 바다 건너편으로 보내십니다. ( … ) 왜 그러셨을까요? ( … ) 이들은 제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회개한 것 같고, 방향을 전환해서 주님을 목적 삼은 것 같지만, 그들의 목적은 주님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으로 인한 평안을, 주님으로 인한 배 부름을, 로마의 압제에서 자신들을 도와줄 사람으로 여긴 것입니다. 이것은 참된 회개가 아닙 니다. 참된 제자가 아닙니다. 그럼 진짜 회개란 무엇일까요? 복음으로 연결되는 진짜 회개란 무엇인가요? ( … ) 죄의 항목 을 회개하는 것도 회개입니다. 내가 세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면, 그것이 예수님을 향하는 것으로 돌이키는 것이 회개입니다. 당연하지요. 그러나 마가복음 1장에서 예수님을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예수님을 쫓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진정 따르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님을 예배해도, 하나 님 찬양하고, 교회 잘 다니고 사역 열심히 해도, 우리가 예수님을 진정 따르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문제가 생기면 주님을 찾고, 문제가 해결되면 주님을 떠납니다. ( … ) 이것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요? 이게 문제에 대처하는 우리의 모습 아니던가요? 꼭 살펴보아야 합니다. 마가복음 1장 29절부터, 시몬 베드로의 장모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열병에 걸렸는데, 시몬은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이 그 장모에 대해 예수님이 말하니, 예수님이 그 병을 치료해 주십니 다. 아이러니하지요. 가장 먼저 제자인 베드로가 구해야 했을 것 같은데요? 그러나 그러지 않 았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요청이 없었지만, 그 장모의 열병을 치료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지요. 그런데 우리는 죽고 주님으로 살았습니다. 문제가 이 땅에서 있지 만, 상황이 어려워지지만, 그래도 우리의 마음은 주님께 가 있습니다. 그런 우리는 주님의 것 이지요. 주님의 사람들이죠. 그 때 주님은 우리의 문제를, 주님의 문제 삼으십니다. 우리가 문제를 직면하고도 평안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마음을 두었을 때, 주님이 그 문제를 해결해 가십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도, 우리는 그 주님이 더 좋은 것입니다. 상황 이 해결된 것보다, 문제가 해결된 것보다 주님이 더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왜 회개하시나요? 왜 여러분의 잘못을 찔려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 시나요? ( … ) 혹시 그 이유가, 지금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아니면 지옥가기 싫어 서라면 …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반드시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정말 따르는 제자 인지, 아니면 예수님이 피하시는 그 사람들 중 한 명인지 … 회개는 우리 마음이 주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주님이면 충분하고, 주님만이 우리의 소원이 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고, 십자가가 우리의 능력입니 다. 문제보다 크신 주님! 내 삶의 상황보다, 나의 죄성보다 크신 주님! 그 주님이면 족한 것 을 날마다 확인하는 것이, 진실로 회개하는 자들입니다. ( … ) 이렇게 주님을 정말 찾으려는 사람들은, 마음에 주님을 채우기로 작정할수록, 우리가 얼마나 다른 곳에 마음이 쉽게 가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 내가 얼마나 죄 인 중의 괴수인지를 압니다. 내가 얼마나 주님의 진노 아래에 있는 사람인지가 명확해집니다. ( … ) 그래서 더, 더, 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소망되심이 명확해집니다. 날마다 내가 십자가에 서 죽은 것을 확인하고, 선포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짖는 것이 그 때문입니다. 십자가 외에 는, 우리의 이런 모습이 고쳐질 길이 없습니다. 우리의 자아는, 죄성은 고쳐서 해결될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날마다 죽음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소망이 십 자가입니다. 우리의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십자가를 지날 때에만,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고 산 것을 확인하고 선포할 때에만, 내 마음이 온전히 주님께로 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회개는 내 마음을 주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주님 자체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말씀하십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내 마음이 다른 곳에 있음을 인정하고, 인지하고, 주님 앞에서 돌이켜, 십자가를 의지해 주님 을 바라보는 것, 주님을 따르는 것! 이것이 바로 진짜 회개입니다. 이것이 제자이고, 이것이 곧 우리의 갈 길입니다.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이 강단에 백 번, 천 번을 서더라도 외치지 않을 수 없는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 이 회개가, 이 십자가의 복음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우리 에게 날마다 명확해지 기를,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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